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온 왕국 (문단 편집) === 건국 배경 === 레온 시는 기원전 29~19년 [[아우구스투스]]가 단행한 [[칸타브리아 전쟁]]에 투입된 제6 빅트리스 군단의 주둔지에서 기원한다. 서기 74년, 69년에 [[갈바]] 황제가 모집했던 제 7 게미나 군단은 이 곳을 영구 주둔지로 삼아 최근에 정복된 히스파니아 북서부 영토를 통제하고 인근의 거대한 광산에서 추출한 금의 운송을 수행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단순한 군사 기지로 쓰이던 이곳은 카스트라 레기오니스(Castra Legionis) 시로 발전했으며, 이 이름에서 '레온(Leon)'이라는 명칭이 파생되었다.[* 즉, 국장으로도 쓰던 [[레온]](사자)이 아니고 사실은 [[레기온]](군단)에서 유래된 도시명이라는 것.] 레온은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수에비 왕국]]에 편입되었다가 586년 [[리우비길드]] 왕에 의해 정복된 이래 [[서고트 왕국]]에 소속되었다. 715년 [[우마이야 왕조]]가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고 히스파니아를 정복했을 때 별다른 저항 없이 아랍 세력에 편입되었다. 아랍인들은 이곳에 [[베르베르인]]들을 이주시켜서 이베리아 반도에 유일하게 남은 기독교 국가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압박하려 했지만, 740년 [[베르베르 대항거]] 때 베르베르인들이 아랍인들과 싸우기 위해 떠나버리면서 계획이 중단되었다. 그 후 레온은 기독교 세력과 무슬림 세력간의 잦은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던 856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국왕 [[오르도뉴 1세]]는 오르도뉴 1세는 한 세기 동안 버려졌던 두에로 강과 칸타브리아 산맥 사이의 '두에로 사막'에 주민들을 이주시켜서 재개발을 단행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들을 재건했다. 이때 레온도 재건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스투리아스 왕국 서부 일대의 핵심 도시로 자리잡았다. 909년, 아스투리아스 국왕 [[알폰수 3세]]의 장남 [[가르시아 1세]]는 카스티야인 무니오 누녜즈 백작의 딸 누냐와 결혼한 뒤 무니오의 선동에 따라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엔 알폰수 3세의 또다른 아들들인 오르도뉴와 프루엘라, 그리고 왕비인 히메나도 가세했다. 알폰소 3세는 반란군에게 붙잡힌 뒤 왕위는 유지했지만 실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산 살바도르 데 발데디오스 인근의 볼리데스 마을로 보내졌다. 세 아들은 왕국의 수도를 아스투리아스에서 레온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으며, 나라의 이름 역시 아스투리아스 왕국에서 레온 왕국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910년 12월 알폰수 3세가 사망한 뒤, 알폰수 3세의 세 아들 [[가르시아 1세]], [[오르도뉴 2세]], [[프루엘라 2세]]는 아버지의 왕국을 삼분하여 각각 레온 왕국, [[갈리시아 왕국]],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국왕을 칭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레온 왕국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